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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터 플러스 제 1 호 기사목록

발간일: 2002-12-15 / 기사 건수 19건 1 페이지
야로슬라프 사이페르트 아름다운 생각에 대한 발라드 장미가 저물어가는 저녁 아름다운 생각은 춤추며 내게 다가오고 초원 내음과 양지바른 언덕 꽃 향기에도 실려온다 나는 기쁨의 삶 속에 노래하는 시인이다 처음으로 나만의 생각을 목도 하였을 때 온 몸이 전율해왔다 그 생각은 나를 놀라 바라보았다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이마에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 생각에 입맞춤하고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싶어 확 안아버렸다 그러자 생각은 마치 어둔 그림자처럼 바닥에 떨어지고 핏방울이 입술에서 뿜어져 나왔다 거친 나의 시로 아름다움을 묶어내길 바라며 고통스럽게 상처를 냈다 또 다시 꽃들 속으로 절규하며 도망친 아름다움은 진정 내게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인권, 28, 241호 Jaroslav Seifert Ballada o krásné myšlence. ...
나눔터 플러스 창간에 붙여... 한국인들에게 체코는 그들의 인생의 목적지가 아니라 저마다 목적지를 향해 거쳐가는 곳이다. 각자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일정기간 거주한다. 대체로 체코의 한국인들은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의 활발한 인생의 시기를 체코에서 보낸다. 이 중요한 인생의 시기에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이상을 거주하면서 체코 사회를 가슴으로 느껴보지 못하고 귀국하는 한국인들이 많다. 그러니 자신이 숨쉬고 살던 사회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중부유럽의 조그마한 나라 그까짓 것 잘못 이해하면 어떠하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체코의 삶을 내가 원했던지 아니면 원치 않았던지 그리고 그 기간이 길든지 짧든지 나는 이미 그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를 떠나 살 수 없고 그리고 그 사회 속에서 숨쉬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기의 존재가 형성되어간다. 그러므로 자신의 사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곧 그 사회에 대...
· 체코 한국 기독협회 소개 체코 한국 기독협회(이후 체한기협) 조직은 금년 봄 말경 이종실 목사에 의해 구체화 되어, 2002년 7월 8일 이종실, 다빗 유레흐, 조영란, 끌라라 뢰벤스타이노바가 함께 모여 체한기협 정관 안을 의논하였습니다. 2002년 7월 15일에 준비위(다빗 유레흐, 이지 루께쉬 그리고 끌라라 뢰벤스타이노바)가 체한기협 등록을 체코 공화국 내무부에 신청하였습니다. 2002년 8월 1일 내무부가 체한기협을 허락하여 등록번호(IČO)를 발행하였습니다. 2002년 8월 7일 체한기협의 설립회원 총회를 열어 협회 위원회 회원(이종실, 다빗 유레흐, 조영란, 끌라라 뢰벤스타이노바) 선출을 하였습니다: 이 날 체한기협의 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 회장 이종실, 부회장 끌라라 뢰벤스타이노바, 총무 다빗 유레흐. 체코 한국 기독협회는 사회단체 관련법83/1990 Sb에 따른 임의 단체입니다. 체한기협의 목적은 체코와 한국 민족의 기독교 사상과 문화를 ...
· 체 코 와 나 누구나 한번쯤은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난 어디로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몰려드는 답답함과 우울한 시간들이 견딜 수 없었을 때, 그 우울함의 탈출구로 난 처음 외국에, 체코라는 나라에 오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창가로 스며드는 아침햇살을 보며 알 수 없는 평온이 내 마음 속에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묶고 있던 기숙사 방으로 환하게 빛나던 그 아침 햇살을 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것은 대학시절 3학년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체코어 연수를 나왔을 때의 일이다. 아마도 난 그때부터 체코를 사랑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체코어를 전공한다는 이유가 아니더라도 나에게 어쩐지 체코라는 나라는 특별해지기 시작했고, 좀 늦은 감이 있었지만 그 이후로 나에겐 체코어를 공부하는데 열심을 내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졌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기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
운명적인 사랑 나는 1953년 프라하의 체코공대 전기대학에 유학을 왔다. 그때 나의 교수 가운데 수학자 한 분이 있었다. 그는 응용 수학을 가르쳤고 외국어를 많이 알고 있어 학교의 외국 유학생들을 관리하는 일도 하였다. 그는 외국어에 남다른 관심이 있어 중국어를 배우려고 국립언어학교에 등록을 하였는데 학생인 나는 그 학교에서 중국어를 가르쳤다. 나는 어려서 중국에서 성장하여 중국어를 조선어 보다 더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와 나는 대학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났지만 그러나 언어학교에서는 입장이 바뀌었다. 어쨌든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는 기회가 있어 서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관심이외에 사랑이란 감정은 없었다. 자존심이 강한 나는 외국인과 결혼을 하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않았다. 결혼을 하게 된 동기는 매우 복잡하여 이 지면에서 그 설명은 피하기로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의 고국으로 돌아간 뒤 그가 청혼을 하여 정부의 허락을 받아 일년 뒤에 나는 ...
한국에 대한 나의 인상 한국의 역사, 문학 그리고 문화를 공부하는 체코인에게 처음부터 바로 한국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와는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인구 초만원의 냉담한 서울에 도착하면서 느끼는 문제이다. 수도 서울의 미와 번영을 한마디로 표현해 주는 궁궐, 초현대식 건물들과 호텔의 이면에는 쓰레기 더미와 거지들, 신체 장애인들, 지하철과 지하도의 장님들과 시 외곽의 빈민가도 있다. 빈부의 차이는 관광객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관광 안내원이 안내하는 지역 이 외의 도시에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볼 수 있다. 자동차로 서울을 돌아다니면 볼 수 없지만 현대화의 이면에 충격을 받게 된다. 고요하고 평범하게 사는 체코인에게 서울은 엄청난 스트레스이다. 급하게 서두르는 것과 소음은 실제로 현재 서울의 모든 곳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지하철에서 떠미는 사람들,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 예를 들면, 가장 먼저 타고 내리려고 하는 것, 좌측통행을 ...
간추린 체코 한국 교류 역사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이동하는 동안 시베리아와 북해로 이주한 한국인들과 항일무장 한국군들과 우리 군인들과의 접촉 또는 우리 군인들과 상호 연락차 마사릭의 부산 방문을 제외한다면 체코와 한국, 정확히 말해 체코와 북한과의 교류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2차세계 대전이 지난 후부터 가능하다. 1948년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단지 북조선인민공화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었지 대한민국(남한)의 존재를 실제로 알지 못했다. 관계의 발전은 한국전쟁(1950-53)으로 잠시 주춤하였으나 전쟁 중에 북조선에 체코슬로바키아의 대사관이 설치되었다. 전쟁 중에 당연히 체코슬로바키아는 모금과 의료진 파송으로 북조선을 지원하였다. 의료진들은 체코슬로바키아가 의료시설과 인적자원을 제공한 청진 병원에서 1958년까지 활동하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체코에서는 천 여명의 고아들과 학생들이 여러 다양한 종류의 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그래서 북한에 많은 전문가들이 양산되었다. ...
간추린 양국어 번역 문학 역사 체코어-한국어 양국 언어로 번역된 작품들에 관하여 간략하게 나마 정확한 정보를 소개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체코는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라는 이름아래 공산권 국가들간만의 교류를 가져왔고 체코슬로바키아가 북한과 계속 관계를 가져오는 동안 한국과는 거의 교류 없이 몇 십 년간을 지내왔기 때문이다. 체코슬로바키아와 북한은 이미 1950년 10월 21일 수교를 맺고 공산권 국가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해 왔지만 한국과는 1993년이 되어서야 공식 수교를 맺고 교류를 시작하였다. 남한과 북한은 1953년 한국 전쟁 이 후 휴전협정을 맺고 서로를 이적 단체로 규정하여 지내온 것이 50년이 다 되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자료의 불충분함 – 북한 자료에는 거의 접근 할 수 없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다.- 은 정확한 조사를 하는 데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북한에서 작업된 체코어-한국어 번역에 관한 조사는 나중으로 하고, 일단 남한에서 이루어진 번...
한국의 체코학과 체코의 한국학과 이미 오래 전부터 체코에는 한국학과가, 한국에서는 체코어과가 개설되어 양국의 언어 교육 및 지역 연구에 큰 이바지를 해 왔다. 양 학과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겠다. 한 국 학 과 1950년, 프라하 까렐 대학 철학부에 한국학 전공이 개설되었다. 당시에는 극동 역사, 러시아어, 일본어 등의 타 전공과 복수로 전공할 경우에만 5년 마기스트 과정을 수학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학만으로도 독립적으로 5년 마기스트 과정을 공부할 수 있다. 한국학과의 학생수는 적은 편이다. 까렐 대학 한국학과는 2년마다 신입생을 선발하며, 선발인원은 4-6명 선이다. 매년 2명의 학생이 한국 국제 교류 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된다. 선발된 학생들은 한국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 문화를 한국 현지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게 된다. 학생들은 학사 과정에 해당하는 1-3 학년 과정에서는 음성학, 문법, 지리 및 경제 일반, 회화, 한국...
그리스도안에서 함께하는 우리들 모든 것은 신학적인 대화로 시작되었다. 신학은 풍부한 유대경전과 기독교 성경의 전통에 서 있기 때문에, 신학적인 대화는 전통으로부터 비롯되어야만 한다. 2천년간의 교회의 대화와 논쟁의 모든 전통들과 그리고 종교개혁의 전통을 덧붙이면 우리는 현재의 문제들과 희망, 과제들을 얻게 된다. 처음에 나는 구체적인 일들을 Jižní Město에서 시작하려고 생각했었는데, 교회구조가 이 작업을 뒷받침 해 줄 수 없었다. 꼬빌리시에서 우리는 근 30여년간의 외국교류 경험이 있다. 그래서 이종실 목사가 „왜 꼬빌리시에서는 안되는가?“ 라는 질문으로 내 생각을 전환시켜 주었을 때 나는 이미 모든 해답을 얻었다. 에큐메니칼 경험은 우리가 단순히 교회당을 예배를 위해 다른 교회에 세를 주는 형식의 그런 방식의 협력을 따르지 않도록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교회기관의 헌법에 기대지 않고 에큐메니칼 예배를 시작하겠노라고 분명히 이야기 했다. 그래서 성만찬...
한국의 초기 기독교 1784년 카톨릭은 개신교회보다 100년 앞서 중국으로부터 한국에 전해졌다. 중국과 일본과 한국은 유럽대륙의 여러 나라들처럼 상호 깊은 관계를 맺고있다. 한국에 카톨릭 교회가 전해질 그 무렵 유럽 교회들은 극동아시아의 선교지로서 단지 중국과 일본만을 염두에 두었다. 한국은 작은 나라여서 유럽 교회들이 생각하기에 만약 중국과 일본이 기독교 국가가 되면 한국도 복음을 받아 들이게 될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중국에 또는 일본에 거주하던 한국인들이 선교사들과 접촉하여 유럽 선교사들이 한국에 오기 전에 이미 한국에 카톨릭과 개신 교회 교회가 세워졌다. 한국교회는 외국으로부터 두 가지 평을 받고 있다. 하나는 한국은 아시아의 유일한 기독교 국가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것도 결코 한국교회를 좌절 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두 견해는 상호 관련이 있다. 첫번째 견해는 한국 기독교의 복음화는 현대의 세계 기독교 선교에서 기적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기독...
한국의 타 종교 한국의 정신문화는 오늘날 까지도 한국인의 삶과 사상, 성향을 형성하고 영향을 미치는 폭 넓은 종교적 성향의 스펙트럼을 포함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최대 수치인 한국인의 46%가 불교를 믿고 그 외에도 39%가 개신교를, 13%가 카톨릭을 믿는다고 한다. 이 수치들은 확실한 신도의 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님으로 역사의 변화에서 오늘날까지의 한국의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은 전통적 창조론의 도입(원시 애니 미즘과 샤 머 니즘)으로부터 역사시대까지 전성기 때 이질적인 경향을 흡수 했는데, 토착적 기질과 일치하는 요소들은 세련되게 다듬었고 그렇게 유례없는 혼합양식이 형성되었다. 이곳에서 불교, 유교, 도교가 1000년 이상을 공존 하게 된다. 그렇다면 외국에서 유입된 전통이 아닌 고유의 샤머니즘에 대해 알아보자. 샤머니즘의 중심에는 샤먼(무당)이 있는데, 무당이 최대한의 신통력을 얻기 위해서는 입문(신내림)의 3단계를 거쳐야 한다...
체코 기독교 종교인구 (2001년 인구조사) 체코 인구 10,230,060명 가운데 종교인구는 3,288,088명 (32,1%)이며, 비 종교인구는 6,039,991 명(59%) 이며 무응답자는 901,981 명(8,8%)이다. 32,1%의 종교인구는 아래와 같이 정부에 등록된 교회와 종교단체에 분포된다. A. 기독교 I. 카톨릭 교회 (약 27%) : 로마 카톨릭 26,8% (2.740.780명), 그리스 카톨릭 (7 675), 구카톨릭 교회(1 605). II. 개신교회 (약 1,5%) : 체코형제개혁교회 1,1% (117 212), 칼빈개혁교회0,1% (14 885), 슬레스까 칼빈개혁교회 0,1% (14 020), 루터개혁교회 (5 412). III. 체코슬로바키아 후스교회 1.0%(99 103) IV. 오순절 계열 및 기타 개신 교회 (약 0,3%) : 형제교회 0,1% (9 931), 기독교 공동체 (6 927), 사도교회 (4 565), ...
한 국 명 절 · 1월 1일 - 신정 보통 새해 첫 날 이틀을 공식 휴일로 하여 신정을 맞이한다. · 음력 1월 1일 – 설날 음력 1월 1일. 이 날 전국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은 한데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낸다. 제사를 지내고, 조상의 은덕을 기린다. · 3월 1일 - 3.1절 1919년 3월 1일 서울 중앙 파고다 공원에 모여 일제 점령에 대항하여 독립을 선언한다. · 음력 4월 8일 - 부처님 오신 날 이 날 절에서는 축하 의식이 거행되고, 전등 행렬로 의식의 절정을 이룬다. · 5월 5일 - 어린이 날 이 날은 어린이가 주인공이다. 어린이들은 이 날 부모와 함께 여러 흥미로운 행사를 즐긴다. · 5월 8일 - 어버이 날 공식적인 휴일은 아니지만, 각 가정에서 이 날을 축하한다. 자식들은 부모님에게 카네이션과 선물 혹은 고마움의 편지를 드린다. · 5월 15일 - 스승의 날 한국 사회...
체 코 공 화 국 의 공 휴 일 1월 1일 – 새해, 체코 공화국 건국일 1993년 체코 공화국 건국 기념일이다. 1918년부터 75년간 유지되던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나뉘어졌다. 3/4월 – 부활절 월요일 이미 내용이 없는 이교도 전통이 남아있다. 사내아이들은 물이 오른 버드나무 가지를 묶은 회초리로 소녀들을 때리며 소녀들이 예쁘게 그림을 그린 계란을 요구한다. 이 풍습은 시골에서 아직 많이 남아있고 특별히 모라비아 지역에서 볼 수 있다. 5월 1일 – 노동절 5월 8일 – 해방의 날 1945년 파시즘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 7월 5일 – 찌릴과 메또뎨이의 날 863년 당시 대모라비아제국의 영토에 동방교회의 그리스 선교사들, 찌릴과 메또뎨이가 도착한 것을 기억한다. 시민들을 위해 찌릴 문자를 만들어 성경의 중요한 부분을 고대 슬라브 언어로 번역하였다. 시민들은 예배시간에 이해하지 못하는 라틴어 대신 그것을 사용하였다...
체 코 어 / Čeština 한 국 어 / Korejština · 인사 Pozdravy Dobrý den! (도브리 덴!) Dobré odpoledne! (도브레 오뜨뽈레드네!) Dobrý večer! (도브리 베체르!) 안녕하세요? (An-njŏŋ-ha-se-jo?) Dobrou noc. (도브로우 노츠) Ahoj! (Nazdar!) (아호이, 나즈다르) Na shledanou. (나스흘레다노우) 안녕히 주무세요. (An-njŏŋ-hi-džu-mu-se-jo) 안녕, 잘 가. (An-njŏŋ, džal-ga) 안녕히 계세요. (An-njŏŋ-hi-ge-se-jo) · 정중한 표현 Zdvořilostní fráze Jak se máte? (약 세 마떼?) Děkuji (뎨꾸이) Mám se dobře. (맘 ...
한 국 요 리 · 돼지 불고기 재료(3인분): 400g 삼겹살이나 목살 양념: - 고추장 2 큰 술 - 간장 2 큰 술 - 설탕 1 큰 술 - 적포도주 나 미림 2 큰 술 - 다진 파 1 큰 술 - 다진 마늘 1 큰 술 - 생강가루 1 작은 술 - 참기름 1 큰 술 - 깨소금 1 큰 술 - 후추가루 약간 조리방법: 1.고기를 준비하여 0,5cm 두께로 넓게 썬다. 2.재료를 모두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3.고기에 양념을 고루 섞어, 냉장고에 3-4시간 둔다 4.잘 달궈진 팬에 기름을 조금 부어 고기를 잘 굽는다. * 상치나 배추 잎에 싸서 먹는다. 김 진 아 Recept korejské kuchyně · VEPŘOVÉ PULKOGI (PEČENÉ MARINOVANÉ MASO) Suroviny (pro 3 osoby) : 400g vepřového boku nebo krkovice marináda: 2 lžíce feferonk...
편집 후기 „아무것도 하지않는 사람은 어떤 실수도 하지않는다.“ 나눔터 + 창간호를 잘 보셨는지요? 아마 많은 실수가 발견 되었을 것입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드러난 실수들과 불성실함을 반성하면서 이 잡지의 미래를 위한 밑거름으로 삼겠습니다. 미처 깨닫지 못한 부족한 부분에 대해 독자들의 친절한 지도를 부탁 드립니다. 소수 민족들이 교류를 위해 이러한 잡지를 발간하는 것이 그리 흔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준비하는 저희들 조차 매우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다음 호에 대한 구상도 많이 떠올랐습니다. 좋은 내용을 갖춘 잡지가 되도록 갑절의 노력을 할 것을 독자들께 약속을 드리면서... 기고로 번역으로 편집으로 그 외 여러 모양으로 수고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 도우시며 미래를 열어 보여주시는 주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립니다. 편 집 진 Slovo na závěr “Kdo nic ...
새는 날아가면서 뒤 돌아 보지 않는다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류 시 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 돌아 보지 않는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Letící pták se neohlíží vzad. Nerad jsem skládal básně, nadto hleděl zpět na svůj život. Vždy si to ztěžuji j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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