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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유적 | 꾸뜨나 호라 세들레쯔에 있는 납골당의 짧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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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07-11-07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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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stnice - 납골당, 일명 해골교회


꾸뜨나 호라 지역은 약 10세기경 조성되었는데 오늘날 야곱교회라고 부르는 사원과 자보지나들 라벰과 슬라브닉 귀족 가문이 자리 잡았던 말린에 있는 정통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들을 그 증거로 들 수 있다. 995년 슬라브닉 전 가문이 몰살당하고 그 통치권이 마르끄바르틱 가문에 주어졌다. 슬라브닉 가문의 일원이었던 미로슬라브가 보헤미아의 여기 세들레쯔 지역에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시토 수도회 수도원을 세우게 되었다. 1142년 맨처음 발트사센의 프랑크 수도원에서 12명의 수도사가 이곳으로 왔다.
 
세들레쯔 인근지역에서 은광이 발견되면서 납골당이 있는 꾸뜨나 호라가 유명해지게 되었고 성모 마리아 승천교회(1280~1320년에 지어짐)가 세워 지면서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그 무렵에 공동묘지가 있는 오늘날의 납골당이 만들어졌다.
 
1278년 보헤미아 왕 오따까르 2세는 공식사절로 수도원장 헨리를 이스라엘로 보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떠나오면서 골고다 언덕에서 흙 한 줌을 가져다가 세들레쯔 수도원 공동묘지에 뿌렸는데 그 결과 보헤미아와 중부유럽 전 지역에 이 사실이 알려져 부유한 사람들이 앞다투며 이곳에 묻히기를 원하였다. 이 매장지는 14세기와 15세기 초 페스트의 만연과 후스전쟁으로 인해 더욱 확장되었다. (1318년 약 3만명의 사람들이 여기에 매장되었다) 공동묘지는 약 3500평방미터였는데 후에 일부 폐지되었다. 무덤에서 나온 뼈들은 처음에는 수도원 주변에 쌓아 두었다가 후에 안으로 옮겨왔다. 뼈 장식 작업은 1511년 반 장님이었던 시토 수도회 소속 수도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14세기에 지어진 정통고딕 양식의 납골당 안에 두개의 채플이 있었다. 그러나 1421년 후스 전쟁 당시 납골당이 불에 타 무너졌버렸다. 오늘날의 납골당은 유명한 이탈리아 건축가 산타니에 의해 1703년 사이에 체코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다. 다 짓고 난 후 건물의 분위가 이상하여 조금 수정하였는데 서쪽 정면 두개의 탑 사이에 보호물이 그 때 세워졌다. 산티니는 또한 피라미드 위의 왕관이라든가 장식촛대 같은 다른 보충물과 뼈들로 장식하도록 실내를 개조하였다.
 
납골당 밖으로 나와서 건물을 보면  1709년 M.V.Jackl에 의해 만들어진 성모 마리아 상이 교회당 정면 두 탑 사이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은 납골당 앞에 서 있는 성 얀 네뽀묵의 동상이다. 그것은 네 명의 성인 - 바츨라프, 보이띠예흐, 쁘로꼬프, 폴라리아 - 옆에 있다.
 
1784년 황제 요셉 2세가 수도원을 폐지했고 그 소유권을 귀족 가문 슈바르젠베르그에게 넘겼다. 1870년 부터 날짜가 매겨진 오늘날의 뼈 장식물은 체코의 나무 조각가 프란티쉑 린트의 작품이다. (마지막 계단 오른쪽 위에서 그 이름을 볼 수 있다) 원래 뼈 무덤이 6개 있었는데 그 중 2개를 그가 없애버렸다. 모든 뼈들을 다 소독한 후에 회칠하여 사용하였다. 프란티쉑 린트는 또한 장식으로 슈발젠 베르그의 갑옷 위에 입는 문장이 든 덧옷을 사용하였다. 사용되지 않은 나머지 뼈들은 다시 매장되었다.
 
입구에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인류의 구원자 예수라는 뜻인 HIS 가 새겨져 있다. 계단  양 쪽에 마주보고 두개의 성찬잔이 있다. 계단을 다 내려가면 오른쪽에 FRANTIŠEK RINT Z ČESKÉ SKALICE - 1870 이라고 새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체코 조각가 프란티쉑 린트 - 1870) 지하 채플 한 구석에 커다란 뼈 무덤 피라미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뼈들은 서로 묶지 않고 쌓여있다. 인간의 뼈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는 아무도 중요하지 않음을 상징한다. 죽음은 인간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속죄 - 예수의 구원의 작업은 그의 탄생, 십자가에 죽으심 그리고 부활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것은 모든 죽은자들을 다시 살리심으로 완성될 수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이 주어질 것이다. 의인에게는 하늘의 상급이 주어질 것인데 이것은 나무 왕관으로 상징되고 있다.
 
지하 교회 중앙에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뼈를 이용한 상들리에가 있다. 상들리에 밑에는 지하 납골소가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데 거기에는 15명의 부유한 시민의 유품이 보관되어있다. 납골소 주변에는 바로크 양식의 장식 촛대들이 있다.
 
제단 벽의 움푹들어간 곳에 성체안치기를 발견할 수 있다. 지하 채플 왼편에 슈바르젠베르그 가문 소유의 문장이 든 덧옷을 볼 수 있다. 이것은 1591년 rAAB 전투에서 슈바르젠베르가가 터어키에 승리한 것을 상징한다. 장식장 안에는 후스전쟁의 용사들의 해골을 전시해놓고 있다.
 
이 납골당은 약 40,000명의 보통 사람들의 무덤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뼈 장식 작업은 영원성의 가치와 그 진상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우리 이웃을 향한 책임을 다 했을때에만 우리를 용서하신다. 용서의 계율은 우리가 죽을때 적용 될 것이다.
 
댓글)
위의 내용은 꾸뜨나 호라 세들레쯔 납골당 안내글을 나눔터가 번역한 것입니다.
그곳을 방문하신 분들 가운데 몇 몇분들이 초기에 어줍잖게 번역된 한글안내글을 보시고 격려를 보내주셔서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최근 방명록에 위의 글 내용을 원하시는 분이 있어 이곳에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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