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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2019-09-17 15:26:49 / Czech: 2019-09-17 08:26:49 / (시차: 7 시간)

나눔터가 드리는 생활정보

프라하의 유적 | 로레따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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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04-02-21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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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시야에 유명한 성스러운 곳의 앞부분이 들어온다. 그곳은 이태리 로레타의 산타 카사(Svatá Chýše)와 같은 로레따 성당(Loretánská Chýše)이다. 프라하의 로레따 성당은 1621~31년 사이에 Kateřina Begina z Lobkovic에 의해 세워졌다. 40년 후에 이 성스러운 곳은 회랑으로 둘러 싸이고, 1740년 이후에 확장되었다. 18세기 초 성당 앞부분의 정문과 Narození Paně 사원이 세워졌다.

    성스러운 장소로 들어가기 전에 로레따 종소리에 관해 알아보자. 1865년 탑의 윗부분에 설치된 종들은 체르닌 궁전 앞의 테라스에서 제일 잘 보인다. 종들은 1694년 말 유명한 암스테르담의 종 제작자 Claudio Fromm과 체코인 Eberhard z Glaukova에 의해 제작되었다. 종 제작자들은 2.5 옥타브의 음역을 가진 1400 kg의 종 27개를 선택했다. 종은 프라하성의 시계공 Petr Neu-mann에 의해 설치됐다. 가장 큰 종의 후원자는 황제 레오폴드 1세였다. 1695년 8월 15일 최초로 종이 울렸다.

    로레따의 앞부분은 1721~23년 사이에 만들어졌고, Kilián Ignác Dienzenhofer의 작품이다(계획은 그의 아버지 Kryštof Dien- zenhofer가 세웠다). 건축가들은 그 전부터 세워진 전체의 복잡한 건물을 적당한 위치에서 어렵게 하나로 합쳤다. 여기에서 체르닌 궁전의 격식 있는 당당함과 잘 대조되고, 또한 주위 환경에 우아하게 어울리는 전형적인 프라하의 건축물이 세워졌다. 건물 청부인은 Lobkovic의 Filip과 그의 여자 Eleonora Karolína였다. 그들을 연결하는 상징은 조각가 Jan Bedřich Köhl의 대리석 위에 완성되었고, 입구의 정문 위에 놓여졌다. 이것들의 조각가들은 아마도 다음 작품들, 즉 북쪽 구석의 Sv. Felix a Madona조각상들, 남쪽의 Sv. Jan Nepomucký, 그리고 입구쪽의 Sv. František과 Sv. Antonín 조각 상의 작가들일 것이다. 돌로 된 난간들은 조형예술의 거장 Ondřej Filip Quittainer에 의해 장식되어졌다. 마당 가운데 1626~31년에 Giovanni Battista Orison(이 사람은 건물을 측량하기위해 합스부르크의 황후가 보낸 이로, 비엔나에 건물 사본을 제작했다.)에 의해 제작된 산타 카사가 있다. 산타 카사의 작업은 Mikulova에서 로레따를 감독하기위해 남겨진 Kateřina Begina z Lobkovic가 제정적인 후원을 했고 관리했다. 원래 산타 카사는 바깥부분만 장식되어졌는데, 1664년 치장 벽토로 양각됐다. 산타 카사 안쪽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태리 로레따의 기둥과 몇 개의 벽돌을 가져와 세웠다 한다. 은으로 된 제단에는 1775년대의 흑단나무로 된 성모 마리아상이 서있다. 성모 마리아의 인생을 형상화한 그림으로 장식된 산타 카사의 벽은 원래의 손상된 예배당에서 신성 모독자를 벌 주기위해 섬광을 떨어뜨리는 부분을 모조했다. 산타 카사의 아래는 로레타의 설립자이자 후원자인 Lobkovic가문 사람들의 무덤이다(그 가문 사람 들 중 몇 명은 이 성스러운 장소에 묻혔는데, Narození Paně교회의 대리석으로 된 곳에 1858년 죽은 František Josef z Lobkovic의 관으로 확인된다).

    건물 양쪽에 2개의 바로크식 분수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성모 마리아의 승천과 예수님의 부활을 나타낸 것들인데, 1739~40년에 제작됐다. 이것들은 초기 로코코 예술가 Jean Michal Bruderle가 조각하기 시작했고, 그가 죽은 후 Richard j. Pradner가 완성했다.

    로레따의 산타 카사 주변의 회랑 들은 1664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1740년 Kilián Ignác Dienzenhofer에 의해 완공됐다. 4각형의 회랑들은 로레따의 기도를 주제로 47개의 천정벽화로 장식되어있다. : 1750년 Felix Antonín Schöffler가 제작했다. 회랑들의 벽은 성인들과 성녀들, 그리고 많은 고통 받는 사람들의 구원자의 그림으로 장식된 제단들이 있다. 많은 성녀들은 로레따를 선물 받는 귀부인들의 형상으로 돼있다. 회랑은 6개의 예배당이 자리잡고 있다. 북서쪽은 승천하는 성모 마리아의 프레스코화가 있는 예배당이고, 북쪽 가운데는 Sv. František Serafínský 예배당이 이어져 있다. 그곳의 제단에는 Petr Brandlo의 성흔이 나타난 Sv. František의 그림이 있는데, 최고의 바로크 사실주의 작품이고, 대부분의 장식된 회랑 들과 달리 화려함에서 오는 풍부한 표현이 구별된다. 북동쪽의 회랑은 Sv. Josef 예배당이 있는데, 교회 안의 예수가 장식돼있다. 동쪽 가운데 회랑은 Narození Paně교회의 앞부분이다. 이 교회자리에는 원래 Sv. Anna의 예배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증축은 1772년 Kryštof Dienzenhofer가 했는데, 그는 이해에 죽었다. 이듬해 그의 아들 Kilián Ignác Dien-zenhofer가 이어서 계속했는데, 교회의 두 종탑부터 시작했다. 최종 증개축과 교회의 확장은 Dienzenhofer의 이복 형제 Jan Jiří Aichbauer가 했다. 최고의 바로크 건축물의 안쪽 내부는 적지않은 양질의 그림들로 채워졌다. 사제석의 둥근 천정은 1736년 Václav Vavřinec의 승천하는 그리스도의 프레스코화가 장식되어있고, 아래 부분은 1742년 Jan Adam Schöpf의 기도하는 세 명의 왕들과 목자들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가운데 제단에는 Jan Jiří Heinsch의 Narození Paně의 그림이 자리잡고 있다. 목재로 된 훌륭한 오르간의 그림은 18세기 초반의 것이다. 남동쪽 회랑은 성모 마리아와 Sv. Dismas가 그려진 Sv. Kříže 예배당이 있고, 남쪽 가운데는 Sv. Antonín Paduánský 예배당이 위치해있다. 근처의 남서쪽 회랑에는 고통 받는 성모 마리아 예배당에 방문객들이 이어지고 있다. 로코코양식의 가운데 제단은 14세기 말~15세기 초의 고통 받는 성모 마리아의 귀중한 조각상이 아름답게 서있다. 그 옆 제 단에는 Svatá Starosta라 불리는 십자가에 박힌 성인의 조각상이 있다.

    회랑 위 1층에는 16세기~18세기의 예배식용 소품들이 포함된 유명한 성물 전시실이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1510년경의 화려한 그림이 있는 고딕양식의 성배이다. 가장 유명한 전시 물은 1969~99년에 만들어진 6222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돼있는 Kolowratová 백작부인의 의복에 있는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성채 안치기이다. 비엔나의 건축가 Jan Bernard Fischer z Erlachu의 제안에 따라 그 의복은 Matýaš Stegner와 Jan khůnischbauer가 완성했다. 12kg의 무게가 나가는 그 옷에는 머리 위에 빛이 비추는 성모 마리아가 서있다. Lorenzo Bernini의 영향을 받은 이 다이나믹한 구성은 보헤미아에 들어온 극단적인 바로크양식의 최초의 작품 중 하나다. 로레따 성당의 출구 앞은 제1공화국 때에 중세 음악 작품들의 연주회가 열렸던 것을 기억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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